Colonialism

누벨칼레도니: “우리가 국제협약에 대해 논의할 동안 국제혼돈은 지속되고 있어요.”

다레와 디에누는 누벨칼레도니에서 새로이 일어난 위기 상황 이후 자신의 삶에 대하여 전해준다.
1998년 우베아섬에서 살해당한 알폰스 디에누의 아들 다레와 디에누는 자신이 살던 인근 누메아로 군사 동원되었으며, 위기 상황 이후 자신의 일상을 미디어파트에 털어 놓았다. 청년들과 “이해와 소통”을 하는 데 겪은 어려움, 민병대를 향한 두려움 그리고 전망의 부재 속에서도 지상에서 싸우는 그들의 의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5월 19일 일요일 밤에 “소중한 가족”을 보러 집에 들른 다레와와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했다. 동료 민병대원들과 다시 합류하기 전 “모든 것 괜찮은지”만 확인하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었다. 누벨칼레도니에서 새로운 위기 상황 이후 네 명의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38세 카나크족은 “야간 조”에 소속됐으며 누메아의 북동쪽에 위치한 리비에르살레의 노동자 계급 구역을 확보하는 것을 담당하고 있다.

다음날 몇 시간밖에 못 잔 다레와는 그곳이 자신이 자라온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2017년에 우리가 만난 누메아 도시의 또 하나의 노동자 계급 구역인 틴두에서 몇 년간 생활하던 다레와는 이곳에서 4년 전에 돌아오기로 결심한 곳이라고 한다. 리비에르살레의 경계, 거주자, 골목들과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다레와는 “공을 가지고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과 서로 도와주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자긍심이 그들을 단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레와는 “매일 행해지는 경찰 검문”, 전망 부재, “지속되는 물가 상승”, 교도소 수감과 “수많은 알코올과 약”은 인근 청년들의 일상생활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16살에서 18살 사이의 어린 청소년들은 간혹 통제하기 어려워요.”라며 “큰형”들의 역할에 대하여 언급했다. “쉽지는 않지만, 운이 좋게도 우리는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특히 알코올과 관련해서 지도할 수 있었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리곤 “언제나 조심”하라는 좌우명을 청소년들에게 되뇐다.

누메아 지역에서 민간 방위대가 무기를 동원하고 난 이후로는 젊은 카나크족 세 명은 총으로 사살된 이후 상황은 자연스럽게 “악화”했다. 성인들은 해가 진 뒤에 순찰을 강화했다. 다레와는 “통금 시간[오후 6시 – 편집자 주]이후에는 아이들, 할머니들과 여자들, 그 누구도 거리에 없어요.”라고 덧붙였다.

낮에는 댐이 걸러주지만, 밤에는 바리케이드로 이 인근을 봉쇄합니다 “물론 언론에서 들리는 것과는 달리 긴급 차량은 통과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총기에 의한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지만, 이 리비에르살레의 “큰형”은 주권을 되찾기 위한 싸움의 “주체”로 계속 활동할 것이라 주장했다. 정확히는 다레와의 아버지인 독립운동가였던 알폰스 디에누는 여러 순사가 인질로 붙잡힌 우베아 동굴에서 열여덟 명의 동료들과 살해당한 1998년 5월 5일, 그가 두 살 때 물려받은 투쟁이다. 그 이후로 카나키의 진실 정의 위원회의 속한 다레와는 “실존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해 왔다.

신세대 독립운동가

다레와 디누에게 있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젊은 카나크족 세대”는 1988년에 자신들의 모습과 똑같다. “누구도 그들을 멈출 수 없어요”라며, 신세대는 과거 자기 세대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아직도 노인들의 말을 듣지만, 신세대는 다르죠. 우리는 청년들에게 놀라운 것들을 많이 약속했지만… 그들은 결국 자기들을 위해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깨달았어요. 그들이 분단 되어있기에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지만, 첫 번째 보도 이후 노인들이 진정하라는 말에 청년들은 반대했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 사태는 전혀 진정되지 않고 있어요…”

30세 다레와는 만약 인근의 청년들과 “같은 주파수”에 있으면 “큰형의 신분으로 그들에게 설교할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이 싸움을 구축해 왔으며, 자신들의 배 속에서 자라왔던 것이 오늘에서야 나왔어요. 또한 그들은 이렇게 외쳐요. 이제 자신들의 카나크이고 자신들의 시간이다.“ 수많은 경고만큼 일은 크게 터졌다. 최근 몇 달간 일어난 대모에 모두 다 참여한 독립운동가는 “우리들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경고했어요,” 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수도에 불이 나서 놀랬지만 사실 당연한 결과에요. 그리고 정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죠. 누메아는 압력솥과 같아요. 갑자기 열어버리면 폭발하죠.”

“청년들의 반란이에요. 우리는 리베라시옹과 누벨칼레도니 독립 의회 의장 로흐 와미탄에게 인정받아 버거웠어요. 스스로를 강화하는 구조를 멈추는 것은 힘들어요.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알지만 용감하게 정면으로 부딪쳐야 해요.” 선출된 공무원은 같은 인터뷰에서 정부는 “방법을 바꿔야만 한다”고 단언했으며 “누가 처벌받을지 정하고 법원에 압력을 가하는” 루이 르프랑 장관이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란”에 대해 이야기보단 다레와 디누에는 “시민 반항 운동”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선호한다. 그는 가게를 약탈하는 민감한 경제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전후 사정을 가리키며 해명하는 것이 아닌 설명했다. “사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 사람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그것뿐이에요.”라고 한숨 쉬었다.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빈곤선 이하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다는 건 알아요. 사람들은 자신들을 도울 기회가 있었어요. 그래서 자신들만 도왔죠.” 누벨칼레도니에서 카나크족 중간 계층의 생활 수준은 카나크족이 아닌 자들보다 두 배나 낮아요.

우리가 대화를 이어 나가자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주도로들은 철거하는 과정이에요,” 다레와 디누에가17,000-킬로미터 줄 끝에서 전했다. 오늘 이른 오전에 제랄드 다르마냉은 소셜 네트워크 X에서 하루 전에 “성공”한 철거 작업을 스스로 축하했다. “댐 칠십육 개 철거”,라고 해외 영토 내무부 장관이 전하며, 현장에 투입된 수많은 증원병이 “공화당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이와 같은 작업을 늘릴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순회를 마치고 온 지 얼마 안 된 독립운동가는 “조금 힘들어도” 지난밤은 다른 밤들에 비해 “평온”하다고 전했다. “기동성 있는 보초병들은 계속 전진해요,” 그는 말했다. “청년들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이는 반복되죠. 끊임없이 쫓고 쫓기고 있어요.” 총살당한 젊은 카나크족 3명과 22살 순사를 언급하며 주민들과 경찰을 이런 상황에 내몬 정부 당국의 탓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문제”이면 “정치적인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 개정[반드시 12월 15일 이전에 열어야 하는 지방선거를 위해 유권자의 동결을 종료하기 위한 헌법 개정 – 편집자주]을 철회해야만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어요,” 다레와가 이어 나갔다.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 없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들은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알고 있어요. 문제는 정치인들이 우리 세대를 위해 국제협약에 관해 이야기해도 완전한 주권 획득만이 국제 협약입니다. 50년 뒤도 20년 뒤도 아닌 지금. 우리는 교육, 경제, 음식 등과 관련한 제도를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이용해야 합니다.”

답변되지 않은 여러 질문들

2017년에 우리에게 일러준 것과는 달리 다레와 디누에는 대부분의 다른 분리주의자들처럼 궁극적으로 첫 두 자결 국민투표는 참가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이 2021년 12월에 시행한 투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가려고 노력은 했으나 국민투표는 우리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깨달았죠.”라고 후회했다. 2018년에는 국가 원수를 우베아에 환영했으며 대학살이 일어난 지 삼십 년이 된 날에 “용서의 코코넛 나무”를 함께 심었다. “나에게 선택지는 없었어요. 노인들의 말을 따라야 했죠. 오늘날에도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대체 우베아에 왜 왔는지 의문이에요.”

이제부터 그는 “정부는 언제나 식민 정부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정부는 해방과 탈식민지화를 지원하는 파트너[누메아 협정의 조항에 따른 용어 - 편집자 주]지만 오늘은 아니다,”라고 이어갔으며 최근 몇 년간 관찰한 모든 문제를 인용했다. 정부를 군도 우파의 주요 인사이자 남부 지방의 주석인 소니아 배키아에게 일임했다. 그는 전 장관 소니아의 발언을 인용하여 “망쳐버리라”라고 했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사라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르네상스 누메아 시장인 소니아 라가르드의 말에 따르면, “제도적 중단”을 주장하는 여러 목소리가 있고 대통령에게 베르사유 회의를 소집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반면, 다레와 디누에 역시 정치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는 “1988년에 일어난 것과 똑같아요. 모든 것은 협상으로 결정 납니다.”라고 말했고 여기저기 거론된 대화나 조정 임무 요청을 받아적었다. “어쨌든 그들은 다르마냉에 대해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조금 개 같은 것”이 두려워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기에 우리가 대화 임무를 수행하기엔 위험합니다…그렇다면 대체 누구를 보낼까요?”

이 질문은 다른 질문들처럼 답변되지 않았다. 월요일에 국방위원회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은 “질서 회복을 위한 분명한 진전”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다른 정치적 논의는 어떤가? 화요일에 각료회의가 끝난 후, 정부 대변인 프리스카 테브노는 대통령이 “오늘 저녁”에 군도에서 “임무”를 시작한다고 밝혔지만 “임무”에 대한 부가 설명은 없다.

카나크와 사회주의 민족 해방 전선 (FLNKS)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젊은 독립운동가들이 그의 말을 들어줄 것인가? 다레와 디누에는 “문제는 FLNKS 대표들과 실제로 접촉이 없다는 것입니다,” 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요, 그들은 대언론 발표를 통해 진정을 요구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라디오를 듣진 않아요. 사람들은 지상에 동원됐으니 어쩌면 우리가 현장을 나가야 하지 않을까… 여기선 그들은 결의를 다졌어요. 우리가 국제협약에 대해 논의할 동안 국제혼돈은 지속되고 있어요.”

Available in
EnglishItalian (Standard)Portuguese (Brazil)SpanishArabicGermanKorean
Author
Ellen Salvi
Translators
Sarah Heejin Shin and ProZ Pro Bono
Date
20.06.2024
Source
Original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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